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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24.02.22


우리는 커피로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공간이 숨을 쉴 수 있게 바람을 들인다. 기물을 하나씩 제자리에 두고 물을 데워 온기를 더한다. 메마른 종이 필터를 집어 반듯하게 접는다. 온기가 머무른 도자기 드리퍼 위에 필터를 가볍게 얹는다. 두 스푼. 잘 볶인 커피 원두를 컵에 담아 무게를 잰다. 그리고는 곱게 갈아낸다. 하나, 둘. 잠시 향을 깊게 들이마신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중심이 이곳이며, 이 찰나다. 포트에 물을 받아 잠시 데우고는 컵에 담아 온기를 물들인다.

그러고 보면, 커피를 준비하는 것이란 건 온기를 더하고, 머물게 하고, 물들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포트에서 알맞게 데워진 물을 커피 위로 천천히 부어준다. 향 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날숨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날려 보낸다.


글, 사진│최완성

하루는 손님이 회사에서 꽤나 고된 일을 겪은 듯 풀이 죽은 채 터벅터벅 매장으로 들어왔다.

- 시간도 조금 늦었고 하루를 잔잔히 마무리하는 의미로 에티오피아는 어떨까요? 은은한 꽃향기와 복숭아 향이 피어나 깔끔하고 부드러운 커피예요. 오늘만큼은 저희를 믿고 따뜻하게 드셔보시길 추천드려요.
- 그렇다면 오늘은 추천해 주신 커피로 할게요.


손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를 잡고 구석에 몸을 기댄다. 손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지 나는 감히 예측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굳이 오지랖을 부릴 필요도 없겠지. 서버에 곱게 간 커피를 담고는, 그 위로 따뜻하게 데워진 물을 부어 잠시 뜸을 들인다. 우리 커피가 작게나마 쉼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안에서 밖으로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그리고 다시 밖에서 안으로 천천히 그리고 골고루 커피 가루를 적신다. 손님은 그저 공허의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다. 데워진 잔 속에 커피를 따르고 커피 설명이 담긴 카드를 준비한다. 그러고는 잠시 고민하다 카드 뒷면에 몇 글자를 적고는 커피를 전달한다.

- 따뜻한 에티오피아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커피 바로 돌아와 기물을 씻고 물기를 닦아 정리한다. 잠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오늘은 기물을 닦고 설거지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리고 다시 커피들을 내리기 시작한다. 몇 잔의 커피들을 더 내리고 나니 에티오피아를 마시던 손님이 잔을 들고 오는 모습이 보인다. 한결 가벼워진 표정이다.

- 오늘 커피는 좀 커피는 괜찮으셨을까요?
- 오늘은 정말 좋은 커피를 마셨어요.


미소를 짓는 손님을 보며 다행이라고 화답한다. 손님은 카드는 가져가도 되냐며 지갑 속에 고이 담고서는 들어올 때와는 다른 걸음걸이로 문을 열어 나간다. ‘때로는 좋은 커피 한 잔이 응원이 되기도, 위로가 되기도 하지요’ 카드 뒷면에 적어 드린 한 문장은 응원이 되었을까, 위로가 되었을까. 어찌 되었든 미소가 된 것은 확실했다.

커피를 소개한다고 말하곤 한다. ‘커피를 소개한다는 것’은 커피가 생산된 나라, 농장 이름 그리고 품종과 가공 방식만 등의 정보만 나열하여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너머에 있는 그들의 이야기와 우리의 이야기, 그리고 그 커피를 최종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하면 이어지고 각자의 삶으로 확장되어 갈지를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때로는 품고 있던 시가 되기도, 계절이 되기도, 누군가의 기억 그리고 색깔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가 커피를 소개하는 이유이자 사유하는 방법이다.

커피가 세상을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특별하다. 마법 같은 순간이다. 그것들은 때로는 지쳐있는 누군가에게 한 발짝 더 나아갈 응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슬퍼하는 마음을 달래주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제 막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젊은 남녀에게 웃음을 번지게 하기도 하며, 지구 반대편에서 찾아온 사람들과 친구가 되게 하기도 한다. 세대를 뛰어넘어 우정을 쌓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손을 내밀기도 한다. 그런 마법 같은 순간들을 보며, 우리는 커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제 우리는 ‘지속가능성’을 고민한다. 근래 해외의 커피 농장주들이 하나둘 서울에 오기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성수동의 작은 골목까지 찾아와 주었다. 그들과 대화하며 우리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미래의 일에 대비하기 위함이 아닌 당장 정말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느꼈다.

지속가능성. 영어로 Sustainability chain(서스테이너빌리티 체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결국 끊어지지 않고 같이 굴러가야 하는 체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체인을 연결하는 것. 그동안 농장에서 고객으로 커피들을 연결했다면, 이제는 고객에서 농장으로 커피들을 연결한다.

시공간을 넘어 서로를 만나게 하는 이 프로젝트에 우리는 〈rendezvous project〉(랑데부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커피를 만나는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며 떠올린 기분, 느꼈던 감정을 영상으로 담아 농장에 전달한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묻지만, 우리에게는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며, 체인을 연결하는 행위 또한 커피로 삶을 확장하여 나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커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저 믿는 것만으로 우리는 커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까? 늘 그렇듯 쉽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먼저 ‘좋은 커피’를 사유한다. 좋은 커피란 무엇일지. 눈이 번쩍 뜨이게 할 만큼 맛이 화려한 커피도, 대회에서 우수한 순위를 기록한 커피도, 아주 높은 가격에 낙찰된 커피도 모두 좋은 커피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커피‘라는 것은 그 너머의 여러 사유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커피다. 어떠한 커피는 여러 가지 컵 노트를 적을 수 있지만 그저 맛에서 끝나버리는 반면, 어떤 커피들은 잔잔함 속에서 평화와 순수함 속에서 숭고한 것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사유들과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커피가 우리에겐 ‘좋은 커피’이며,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확장된 의미의 커피다.

우리는 오늘 또 어떤 커피들을 사유하고 소개할 수 있을까. 어떤 좋은 커피들을 만날까. 확실한 건 하나다. 무슨 커피든 우리는 커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최완성
@brewingceremony

커피를 감상하고 사유하고 소개하는 커피 큐레이터.
성수동에서 브루잉 세레모니를 운영하며,
커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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