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ENT
내가 뉴스레터를 보내는 이유
2022.10.26
나는 약 2년 전부터 1~2주에 하나씩 꾸준히 편지를 쓴다.
그 편지는 2,800명 남짓의 사람들에게 도착한다.
〈봉현 읽기〉라는 이름으로.
글, 그림, 사진ㅣ봉현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메일 앱을 연다. 새로운 외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진행 중인 업무를 빠릿하게 살피는 태도로 수시로 메일함을 열어본다. ‘janeannnet@gmail.com’에는 지난 10년간 일한 수많은 기록들이 쌓여있다.
그렇지만 내 메일함은 단순한 워크 박스가 아니다. 사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세계여행 시절 주고받은 엄마와의 안부, 애인과 친구에게 보낸 생일 축하 편지, 누군가와 주고받은 비밀 편지 등이 있다. 어디에 두었는지 잊고 지내던 손편지를 발견하는 것처럼 가끔 꺼내 읽어보기도 한다.
9년 동안 프리랜서로 살며 5권의 책을 냈고 계속 글을 써왔지만, 노션이나 블로그에 끄적이듯이 남겨둔 초고들은 완성되지 못한 메모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혼자 써두기만 하고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글의 생명력을 살리고 싶었고, 내 이야기를 좀 더 가깝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택한 것이 바로 뉴스레터였다.
처음엔 300명으로 시작했지만, 구독자는 꾸준히 늘었고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SNS를 지웠다’로 시작하는 글은 SNS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어 리트윗과 팔로워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후일담을 여러 매체에 기고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 중 일기를 써서 정보를 공유했고,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면서 우당탕탕 경험담을 기록하거나 파리와 베를린에서 실시간으로 여행기를 쓰기도 했다.
우주의 모든 빛을 더하면 ‘코스믹 라테’라는 베이지색이 된다는 아름다운 정보를 알려주기도, 9월 23일부터 12월 31일까지 딱 100일 동안 각자 무엇이든 매일 해보자는 ‘100days 프로젝트’를 모집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노트북에 혼자 쓰고 남겼던 것보다 훨씬 명확하고 다정한 글을 쓸 수 있었고, 사람들의 답장과 후기를 수없이 받으며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을 잔뜩 얻었다.
레터에 쓴 글은 나 혼자만의 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는 편지였다. 유익하고 재밌고 트렌디한 뉴스레터가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봉현 읽기〉는 조금 다른 것이었으면 했다. 의무감과 부담감으로 읽을 필요도 없고 배움이나커리어를 목적으로 한 인사이트도 아닌 레터로 읽히길 바랐다. 그저 쉬어가듯이, 문득 위로받듯이, 조용히 수다 떨듯이.
세상의 흐름에 떠밀리듯 나 또한 여러 SNS를 하고 있지만, 가끔 모든 게 허상 같고 겉치레처럼 느껴지곤 한다. 손가락 터치로 한순간에 흘려보내는 화면 속에서 몇 초 남짓 읽힐 뿐인 타인의 삶. 모두에게 외치고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안개 같다. 또한 너무 진지하거나 우울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꺼려진다. 왠지 그럴싸한 좋은 모습만을 보여줘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은 허무한 착각 속에서 SNS에 이런저런 말들을 남기곤 한다.
혼자의 중얼거림이 아니라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을 때, 그럴 때 레터를 쓴다. 이 또한 얼굴도 신상도 모르는 몇천 명 다수에게 보내는 글이지만, 왜인지 훨씬 가깝고 다정하게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쓰는 글은 혼잣말보다 더 다정하고 세심하다.
나의 뉴스레터는 동굴이자 대나무 숲 같다. 도대체 행복이 뭔지 모르겠다고, 빌어먹을 세상에서 아득바득 애를 쓰느라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밥 먹다가 펑펑 울어버렸다는 어제의 하루를, 마음처럼 안 되는 게 너무 많고 이렇게 게으르고 나태한 내가 너무너무 밉다는 마음을.
그런 이야기를 쓰곤 했다. 친구에게도,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속내였는데, 이상하게 레터에는 숨김없이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읽어주었고, 내게 답장을 보냈다. ‘나도 그렇다’라는 당신의 속내를 담아.
지난 8월 에세이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를 출간했다. 뉴스레터에 썼던 글들을 모으고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레터를 받아봤던 사람들은 종이에 쓰인 글로 다시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고 했고, 책을 읽고 난 뒤 뉴스레터를 구독한 사람들의 반가운 인사도 많이 받았다.
〈봉현 읽기〉는 무료 구독이고 마감도, 규칙도 없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를 성실히 쓰게 하고 열심히 살게 한다. 게으르게 늘어진 나를 일어나게 하고, 이불 속에서 눈물을 닦다가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내 삶의 큰 기쁨으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을 때, 일상 속에서 보고 느낀 것을 나누고 싶을 때, 위로와 응원과 공감이 필요할 때,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봉현 읽기〉라는 이름으로.
봉현
글쓰고 그림그리는 9년차 프리랜서
@bonghyun_know
자유와 속박 사이, 일과 휴식 사이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프리랜서의 삶을 사랑한다. 뉴스레터 〈봉현읽기〉를 발행하며 2022년에는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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